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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1월11일자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는

삼청교육대의 전신 서산개척단의 진실을 파헤쳐본다.

 

서산개척단은 3공화국 초기에 이루어진 부랑아 청년, 윤락녀 등의 인력들을 동원해 서산시 일대의

뻘밭을 개간하라고 알려진 중부주도의 사업단이다.

 

그러나 사실 정부의 발표와 달리 개척단원이라 알려진 피해자들 중에는 선량한 시민이 많았으며

이들에게 인권침해와 가혹행위가 무분별하게 저질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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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개척단은 최대인원수는 1700여명에 달하기도 했는데, 길 잃은 아이를 유괴하고 아무것도 모르

는 유소년, 청년들까지 잡혀 서산개척단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서산개척단에서는 무식하게 돌을 날라 바다를 메우는 식의 강제노동을 반복했고, 아이들은 거기에

가축사료주기나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했다.

 

하지만 중노동에 비해 식사는 형편없었고, 할당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벗겨놓고 때리는 것이 일

상이었다. 몇몇사람들은 탈출을 위해 옷을 벗은채 뻘밭을 달리기도 했으나, 총에 맞거나 공포심을 조

장하기 위한 시범케이스로 죽을때까지 구타당하기도 했다.

 

대한뉴스에서는 서산개척단중 125쌍의 합동결혼식이 있었다고 했으나 사실 보여주기 위한 요식행위

였을 뿐 파트너는 임의로 정해주고 그중에서도 강제로 짝이 지어진 사람 중 절반 가까이는 이미 배

우자가 있는채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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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개척단을 갈아서 간척한 땅은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 3지구가 되었고 오갈 곳 없던 개척단원

들이 터를 잡아 모월3구의 원주민이 된다. 정부는 개척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언급했지만 경작권만을

인정할 뿐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를 걸었으나, 상고심까지 패소로 털렸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최근 날아들고 있는 정부의 변상금 압박.

이들은 왜 정부의 사과와 보상도 아닌 변상금이라는 굴레까지 씌워졌을까.

오늘 스트레이트에서 서산개척단으로 있었던 분의 증언과 함께 현재 상황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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